청소하는 여자.

여자이야기 2008. 9. 6. 02:16 posted by yeena,

여자는 침묵에 휩쌓여있었다.
단지 그녀의 잦은 움직임만이 그녀 주변의 정체하고 있던 공기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여자는 끊임없이 방안을 닦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방안을 기고 있었다.
금방 닦아낸 바닥위로 떨어진 몇방울의 땀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오른팔이 그리는 부채꼴의 동선은 멈추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쥐고 있던 오른손을 풀고 힘 없이 벽으로 몸을 기댔다.

그녀의 하얗고 동그란 이마는 스펀지처럼 땀으로 젖어 금방이라도 짜낸듯한 물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제법 길고 하얀손에는 아직 딱지가 앉지 않은 크고 작은 몇개의 긁힌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있었고,
투명한 폴리쉬가 발린 손톱끝은 폐가의 기왓장 마냥 겹겹이 들고 일어나 있었으나,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듯 했다.

사실 여자는 몇일째 자지도, 먹지도 않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지쳐 잠이 들 때까지
바닥을 닦고 청소를 하고 거울을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때로 멈추고 또 멍해졌다.

여자는 그 날을 떠올렸다.
여자의 팔은 기계적으로 바닥을 문질러 닦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그 날을 닦아내려는 듯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 날.
여자는 남자가 있는 공간을 빠져나와 아직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갔다.
골목길에는 술에 취한 듯한 두 사내가 서 건물을 빠져나온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여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길가로 차분히 걸어나갔다.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에게 짧게 목적지를 말하고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뒷좌석에 몸을 뉘였다.
여자는 왠지 모르게 미뤄왔던 할 일을 금방 해치운 사람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떠올리기엔 머리 한구석을 쪼는듯한 두통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막상 떠오르는 생각을 막지도 않았다.

뒷좌석의 조금 열린 창문틈으로 아직은 새벽보다 밤을 닮은 공기가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바람에 머리가 이리저리 날리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마치 그 날이 가까운 과거 인것 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아아, 눈을 감아 버릴껄. 그랬다면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를 진심이라 믿지 않았을 것을.'
이것은 차라리 탄식에 가깝기도 하고 절규에 가깝기도 했다.

여자는 여전히 침묵에 휩쌓여있었다.
열어둔 창의 작은 틈새로 차갑고도 투명한 시월의 바람이 
무엇엔가 홀린듯 길 잃은 나비처럼  방안에 들어와 갇힌다. 

침묵을 깨는것은 다시금 시작된 그녀의 움직임이었다.
여전히 여자는 부지런히 그 날을 닦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