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여자를 만난 여자.

여자이야기 2008. 8. 18. 22:42 posted by yeena,
S역,조금일찍퇴근해서돌아오는길.
S역에서여자는어제와같이환승을한다.
S역의환승로는다른역에비해서는조금긴편이지만조금한산한편이다.

아마도4시가가까워오는이시간은
대학생이나장바구니를든아줌마,보통의직장인외의사람들이대부분이다.
여자는몸이조금아프다는핑계를대고일찍퇴근했다.
하고있던일도마무리지었고,마감도끝난상태라
근래에멍해있는여자의모습을보더니팀장은흔쾌히
'응,그래일찍퇴근해서,좀쉬어요.'라고친절하게허락해주었다.

그래,휴식이필요하다.
여자는몇일전헤어졌다.
'그남자와나사이에는시작도없었으니,끝도없는것이당연한것인지도모르겠지만.'이라고
그녀는생각하고있었다.

몇달전여자는,애인과헤어지려는시기에있는남자를만났고,
여자역시몇년간사귀어오던애인과헤어진지서너달정도지나있었다.
여자는평소에그남자에대해호감이있었던터라불쑥약속을잡는그남자가싫지않았다.
그리고적절한타이밍에적절한만남이라고생각하며두어달그를만나오고있었다.
한동안퇴근을하고나서누군가와만날약속이있다는사실에심리적으로큰만족을느끼고있었고,
그와만나는동안은옛날사람에대한그리움을떠올릴여유가없었고,
탐스러운굵직한목소리의가수가노래했듯이,'사랑은다른사랑으로잊혀진다.'는생각을했다.

그런데몇주전부터
그의연락이뜸해졌고마침내그는전화를피하기시작했다.
그리고몇일전그가전화기를통해조금은미안하다는듯이
'우리,아무것도아니잖아.나새로만나는사람생겼어.연락안했으면해.'라고말했다.

여자는아무렇지않다.고생각했다.
지인들이평소의그녀를평가하듯'냉정하고도침착'하게,
즉,그녀답게'그래,그럼.'하고말했다.

전화기를귀에서떼어내려놓는순간
그녀는얼굴에서뭔가찌릿찌릿한느낌을느꼈다.
눈꺼풀이파르르떨리고맥이빨라진것같은느낌에불안함을느꼈다.
몇일간의과로탓이라고생각해비타민몇알을줏어먹고는잠자리에들었다.

덮어쓴이불속에서결코그녀는그와의일때문이라고생각하지않았다.
왜냐면그의말처럼그와그녀는'아무사이'도아니었기때문이다.
연애를시작한적도없으니,그연애의끝도없다고생각했다.

그리고몇일후그녀는가슴이뻐근함을느꼈다.
숨을크게쉬려고하면가슴께에생선의가시가걸린듯따끔거려오기도했다.
주변의충고에따라병원에도가보았으나,외적으로보여지는원인은없고,
아마도'신경성'일것이라고말하고그저'잘먹고,잘쉬고,잘자라.'고만했다.
신경안정제와수면유도제를처방받았다.
과거의가벼운증상과달리조금힘들다고느꼈지만,별것아니라고생각하고있었다.

여자는S역의터널같은환승로를걷고있었다.
S역의환승로의끝에는제법긴에스컬레이터가있었다.
평소라면에스컬레이터에서도걸어오르내리는그녀였지만,
에스컬레이터에서는순간왼쪽어깨에매고있던가방이흘러내려.
가방을고쳐매려고잠시서있을때였다.

너무나도낯익은얼굴이반대편에서그녀를향해올라오고있었다.

올려묶은길지않은갈색머리.
약간촌스러워보일수있는핑크색이잘어울리는하얀피부.
동그란갈색의큰눈,커다란귀걸이와연한청색의미니스커트차림의여자.

같은여자가봐도예뻐서였을까?낯익다는느낌에
머릿속에서다가오는얼굴이누구인지애써떠올려보지만
도저히누군지생각이나지않았다.
인쇄업체의직원이었나?새로계약한광고사의직원은아니었는데,
대학동기치고는좀어려보이는외모야,아,자주가는동네커피전문점의알바생었던가?
학교후배는아닌것같고,도대체누구였지?하고머리를아무리짜내어봐도그녀의정체를알수없었다.

올라오던그녀와내려오던여자가바로옆에서스쳐지날때까지
그녀가머릿속의수없이많은얼굴들을CSI몽타쥬작성장면처럼뒤적거리고있을때,
눈이마주친순간그녀의웃는얼굴을보고여자는알게되었다.

그녀는,남자의여자였다.
남자의집에서얼핏그녀의사진을본적이있었다,아무생각없이.
여자는지나간그녀의뒷모습을살짝돌아보고는그사진을떠올렸다.
그의그녀가그의목을감고입을벌려신나게웃고있고남자는목이졸리는지조금찡그린표정이었지만,즐거워보였다.
그녀는그사진을보고꽤나잘찍은사진이라생각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내리는순간동안여자는생각했다.
'그와2년을넘게사랑한그녀도그와헤어진후에저렇게밝고아름답게잘살고있는데,
나는무엇일까,왜나도모르는사이에이렇게아픔을극대화시키려고하는걸까.
나는이런아픔의감정을즐기고있는지도모른다,하지만여기까지만.'이라고생각했다.

그의그녀를만난이후,그녀는몸이조금가벼워졌음을느꼈다.
집에도착하자마자하이힐을벗어놓고는맛있는저녁을만들어먹어야겠다고생각했다.
오랜만에야끼소바를만들었다.맛은스스로꽤만족스러울정도였다.
한동안몸이안좋다고생각되어멀리했던맥주도한캔꺼냈다.
맥주와함께야끼소바를거의다먹어갈때쯤에
그녀는가슴께에걸리던느낌이사라진것을알게되었다.
그리고여자는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