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가 된 여자.

여자이야기 2008. 5. 21. 17:47 posted by yeena,

발자국소리가나지않는여자가있었다.
그여자는아주뾰족한하이힐을신고서나무바닥을걸어도,아니뛰어도,발자국소리가나지않았다.
그녀의발자국소리를들은사람은아무도없었다.
모두들그녀가말을걸고나서야,그순간그곳에그녀가있음을알아채곤했다.

그녀는발자국소리가나지않는것을원망하거나부끄러워하지않았다.
어쩌면오히려그것을즐기는듯했다.

발자국소리가나지않는여자에게는고민아닌고민이하나있었다.
그녀가숨을쉬는매순간그녀의머릿속에는너무많은생각들이떠올랐다.
그것이그녀의고민이었다.

그여자는끊임없이생각했고,
어떤날은너무많은생각들이머릿속에자리를잡고꿈틀꿈틀거렸고,
방안에어지럽게펼쳐놓은책들마냥그녀의머릿속을혼란스럽게했다.
여자는잠을자기위해불꺼진방에서매일밤머릿속에펼쳐진생각들을하나하나덮어야했다.
그과정은또한,학을1000마리쯤접는종이접기와도비슷했다.
똑같은순서로머릿속의생각을하나하나접어가야했다.
선명하게손톱으로접어내지않으면,종종다시펴쳐그녀를번거롭게했으므로
그녀는신중한자세로,천천히,정성스럽게머릿속의생각을접었다.

그러던어느날여자는펼쳐진생각을접다가밤을새고말았다.
어슴푸레밝아오는하늘을보며여자는
다음세상에는제발불가사리가되어태어나게해달라고빌었다.
그리고잠시후,여자는지친눈을감았다.
그리고영원히눈뜨지않았다.

발자국소리가나지않는여자는
방사형의몸체와수없이많은촉수를가진불가사리로다시태어났다.
불가사라는뇌가없었으므로,
그녀는생각을하지않아도되게되었다.
사실,그녀,아니,
그불가사리는자신이이전에무엇이었는지,
어떤고민을가지고있는지,
지금어떤모습이되었는지,
생각할수조차도없었다.

불가사리는,정확히발자국소리가나지않던여자는불가사리로다시태어나
바닷속을기어다니며홍합이나조개따위를먹으며
불가사리가오르도비스기부터지금까지,즉,약5억년동안살아왔듯
그녀도영원히살았다.

그녀가행복하게살았는지는모르겠다.
그녀는'행복','슬픔','아픔','화남'등의감정을느낄수없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