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먼지쌓인방 2007. 8. 19. 21:18 posted by yeena,


무화과가 꽃을 피운다.

아무도 모르게,
아름답지도 않은,
눈에 띠지 조차 않는 꽃을 피운다.

봄부터 이맘때까지 한참,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우고,
조금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엔 맺음 하려 애를 쓴다.

8월의 작열 하는 햇살 아래.
꽃잎 한번 내비추지 못한 무화과가
암술과 수술을 흔들며,맺음 하려고 애를 써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이 작열하는 여름도 그 숨을 다하면,
무화과 나무에는 무화과가 열리겠지.
열매의 끄트머리부터 붉은기가 타고 올라와
단단했던 열매를 무르게 하고
곧 단내를 풍기며 곤충을 유혹하겠지.

나는,
설익은 무화과 열매를 줏어먹은
어린날의 기억을 쫓듯. 성급하게, 조급하게,
서두르며,아직 물러지지 않은 독기를 잔뜩 품은듯 단단하기만한
열매를 딴 아이처럼 군다.

풋내나는 과육을 맛 보는것에는
식물이 제 종자를 지키기 위해,
타고난 식물 본능적인 독기로 인한
아릿한, 통증을 동반한다.

나는 당신이 거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혀끝부터 가슴 한 구석 까지 견디기 힘든 아릿함을느끼고.

나는 마치
어리석었던, 성급하기만했던,기다림이라는것에익숙치않았던,
어린이로돌아간듯, 어쩔줄 몰라 후회 하며 울음을 터뜨리지만,
이미 붉게 부어 올라 버린 입주위를 소매로 훔치면서도,
손에 쥔 열매를 놓아버리지 못해, 던져 버리지 못해,
이렇게 울먹 거리기만 한다.

제 몸속에 품은 셀 수없이 많은 까만 종자들이
연한 과육을 뚫고 나오기를 기다리듯.

나는 스스로가 짓물어져 단내가 풍기도록.
그렇게 이를 악물고 8월을 견뎌내고 있다.

유부초밥 이야기.

반토막의정어리 2007. 3. 27. 02:56 posted by yeena,

#1
고등학교때,타지역으로학교를다녔기때문에아침일찍일어나서봉고차를타고등교했었는데,
나는워낙아침잠이많은데다가입이깔깔해아침을거의못먹었었다.
늘늦잠을자던나에게아침은워낙바쁜데다가가리는음식도많았던내가유일하게
맛있게먹고가는아침은'유부초밥'이었다.
엄마가수험생밥먹이기의수단으로유부초밥을근처의풀무원공장에서1박스사다가
한달내내아침마다유부초밥을싸주신적이있다.

한달후에,
그좋아라하던유부초밥이물려,결국그냥아침밥을먹었다.
엄마 win!


#2
유부초밥은이상하게잘하든지못하든지굉장히비슷한맛을낸다.
가루뿌리고,소스뿌리고,유부에퐁당집어넣으면되는간단조리법의탓인가,
정말맛있고없고의차이가별로없다ㅡ고생각했다.

고3때기숙사룸메엄마가
내가유부초밥을좋아한다는말을듣고
일요일날기숙사로돌아오는길친구편에유부초밥을싸주셨는데,

겉보기등급은분명A+급이었다.
은행,표고,쇠고기,당근,우엉,피망어느하나빠진게없었다.

한입먹고나서,나는울뻔했다.

왜냐면.
왜나면.
왜냐면,
왜냐면,
왜나면,
왜나면,

맛이없었다-_-
간이정말안맞았다.
유부에서물기너무짜면맛없다.

결론은,맛없는유부초밥도있었다.


#3
고기도먹어본놈이잘먹는다고,
소싯적에유부초밥좀먹었던난,유부초밥을잘만든다.

뭐그깟인스턴트유부초밥뭐가어렵냐지만,사실손이많이간다.

레시피ㅡ
1.밥두공기정도를볼에넣고잘식힌다.
밥은약간고슬고슬하게지은게좋으며금방한밥도,한지오래된밥도안좋다.
밥한지'적당~히'지난밥이좋다(?)

2.유부초밥봉지를뜯어서배합초와뿌시러기를뿌린다.
배합초가모자라면식초+설탕으로배합초를더만들어도되고,
뿌시러기가허전한사람은야채랑쇠고기따위를볶아서넣어도맛있다.

3.유부봉지를뜯는다.봉지째로잡고눌러서물기를짠다.
너무짜면에피소드2에서말했듯이,맛없다,정말,적당히짜라.
약간남은국물(?)은밥에다가부어줘도좋다.

4.밥을뭉쳐서유부속을채운다.
유부속에밥이적당히들어가서빵빵하게채우면좋다.
너무채우면터진다.터지면먹는다.
그런데만들다가먹다보면배불러서정작맛볼때는배불러서별로맛이없다.
또는,터진거먹다보면다먹어버릴수도있으니주의.
주의2)너무쪼물쪼물딱하면짜진다.

5.계란물로밥부분을봉하면도시락용유부초밥완성!


#4
유부초밥의모양은참귀엽다.요즘은사각형도있고,다른모양도많긴한데,
나는그삼각형모자모양이제일좋다.

후드티셔츠의모자부분을연상시키는아주산뜻한모양이다.
특히나밥이보이는부분에계란물을입혀서살짝구워내면더좋다.


#5
고3수능시험날나는점심도시락으로유부초밥과미소시루된장국을보온병에넣어갔다.
점심시간에애들하고모여서밥먹는데,애들이ㅈㄴ의아해했다.

결과는...
결과는...
결과는...
결과는...
결과는...
결과는...
시험망했다.

애들말로
초밥->시험초치고,
김밥->시험말리고,
죽->시험죽쑨다,
...

싸오지말아야할것들중에초밥이있었던거다-_-
1년간유부초밥을원망했다.

그래서,
재수할때는초밥안싸갔다.
근데또망했다ㅡ,결국유부초밥탓이아니었다.


#6
유부초밥먹을땐당연한듯미소된장국이다.
후룹후룹


#7
아침에챙겨먹으라고밤12시에유부초밥을만들고카레를데우고있다.
그야말로
미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드나잇쿠킹이다.

난늦잠을잔다.
내가자고있을때,내가만든유부초밥을야금댈사람생각에미드나잇쿠킹도즐겁다.


취醉하고 싶은데.

먼지쌓인방 2007. 3. 11. 21:06 posted by yeena,


취하고싶은데,취하지를않는다.
오늘은입에털어넣은술이달다.
술이달면취한다는데,
왠일일까알콜분자는세포구석구석으로찌르고들어와
온몸의신경을한바탕자극시키고정신은오롯이깨워놓는다.

따르자,마시자,취하자,잊어버리자.
오늘은모두잊자마신술이너에대한기억을또렷하게현상한다.

웃고떠들던술자리에서혼자돌아오는길.
차갑게얼어붙은입김을바라보며
괜시리얼은땅을스니커의발끝으로차며운다.

취하고싶은데,취하지않는나는술을원망하면서.

이새벽에볼리만무하다만은부끄러운생각이들어
소매로훔치고또훔쳐도,눈물이난다.

우리는.

먼지쌓인방 2007. 2. 12. 21:04 posted by yeena,

나는너를'꽤괜찮은남자'라고말하고,
나는꽤괜찮은남자인너에게마음흔들려고민해.
너는나를'꽤괜찮은여자'라말하지만,
너는꽤괜찮은여자인나에겐마음흔들리지않아.

우리는
언제까지그좋은핑곗거리인
'친구'일수있을까.

널계속보고싶은친구로생각도하지만,
마음속에선,
한번잃고다시못봐도잠시나마연인이길원하는마음도없지않아.

모호模糊.

먼지쌓인방 2007. 1. 2. 21:03 posted by yeena,


영화속어떤이야기.
행복한결말인지,
불행한결말인지,
그이야기의끝이모호하던
휘파람을부는사내의이야기처럼.

휘익ㅡ,
하고휘파람을불면.

길고기인휘파람이.
나를둘러싼공기위에날카로운자취를남기고.

휘파람의자취에
말캉한공기분자는매끈하게잘리워
오렌지의껍질인냥현재에서떨어져나온다.

알맹이와분리된껍질같은나의시간은.
휘파람사내의결말인냥,
행幸,불행不幸을알수없는결말에놓이어
모호模糊ㅡ,하고가느다란한숨을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