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꾜에 가는 마음은 그리 유쾌 하지 않았다.
8주간의 호주 여행 동안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외로웠다.
그저 나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행 후반 부터 사진 찍기를 지극히
게을리 하고 있었고, 도꾜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하루 사이에 두터워진 옷차림과 갑작스런 추위에 움츠러든 어깨위의 카메라는
그야 말로 실제무게의 서너배의 피곤함으로 다가왔다.
돌아와 보니 도꾜에서 찍은 사진이 몇장 되지 않았고
몇장안되는 사진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은 단한장도 없었다.
게으름 피운 나 자신에 대해 후회스러웠다.
좀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은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보는 내내 계속 되었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몇장 손질해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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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사쿠사의 아침.
12월 30일 저녁 6시 도꾜에 도착.
도꾜에 도착했을 때 도꾜는 영상 4도.
나는 반팔티, 후드쟈켓 차림이었고,
9시간의 지루한 비행과
나리따 공항에서 아사쿠사의 숙소를 찾아오는 길에
너무 많이 헤맨탓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들어 버렸었다.
다음날 아침,
잠을 쫓는 겨울아침 공기를 가슴 속 깊이 불어 넣으며,
낯선 도시에게,
안녕?
#2
아사쿠사를 추천해.
도꾜에서 여행 하는 동안에는 아사쿠사에 있는
사쿠라 호스텔에서 주욱 머물렀다.
궂이 도꾜에서도 아사쿠사에 머문 까닭은
일본에 먼저 다녀온 지인의 추천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를 잘 아는 그녀가 "네가 좋아할 만한 곳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추천을 100% 믿었고,
그녀의 추천은 200% 만족스러웠다.
카미나리몬게이트 부터 이어지는 카미나리몬 쇼핑센터는
전통적인 물건들과 음식을 파는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듯 했다.
시부야는 우리나라의 명동,
하라쥬쿠는 우리나라의 이대,
우에노는 우리나라의 영등포와 흡사했다.
다른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해, 감히 단언할 수는 없으나,
아사쿠사는 내가 다녀간 곳중에서 가장
'일본스러웠던곳'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내가 머문 시간 (12월 30일부터 1월4일까지)은
새해맞이 기간이었던 터라,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사쿠사의 밤거리는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12월 30일의 조용하고 한적했던 모습.
그리고 12월 31일부터 1월 3일까지
센소지를 찾는 사람들로 밤새도록 축제를 벌이는 모습.
나는 이방인 이었지만,
한껏 축제 기분을 누릴수 있었고,
나는 붐비는 것을 싫어하지만,
붐비는 인파속에서 새해를 맞는 기분은 낯설지만
기분좋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허름한 술집들이 길 양쪽으로 주욱 늘어져 있었다.
낮은 천장에 붉은 등이 매달려 있고,
매일 같이 밤늦도록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들.
삐그덕 대는 나무로 된 식탁에 둘러 앉아
잔을 부딪히며 웃고, 즐거워하고,
새해를 맞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친구들은 내가 카메라 메고 가는 모습을 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찍어줬다.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정지 동작을 취해주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느라고 사진이 흔들렸는데도
찍고나서 보여주니 잘나왔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주던 유쾌한 친구들.
#3
안녕,2008년?
12월 31일 저녁.
같은 방을 쓴 런던에서 온 레베카와 센소지에 갔다.
새해를 맞아 소원을 빌기위해 몰려든 엄청난 인파로
센소지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새해에, 보신각종을 울릴때 종로나 시청근처를 연상케 하는)
절 주변에는 장이 열려 먹거리나 장신구를 팔고있었다.
12월31일 오후10시부터 줄을 서서
대략 3시간 정도 기다려서 도달한곳.
뒤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등장한 경찰들.
커다란 그릇 같은 곳에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고
손뼉을 짝짝 두번치고 인사를 두번 하는 전통이 있다고
줄섰을때 일본인 아저씨가 가르쳐 줘서 따라 해봤다.
절주변은 이미 축제분위기.
일본 사람들도 새해 운세 보기를 좋아하는지,
여기저기 한해 운세를 뽑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레베카와 나도 시도 해보려고 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관계로
'뽑아도 내용을 알수없다.'는 판단하에 구경만.
오미꾸지라던가. 액운은 매달아 두고 가고 행운은 가져간다던가.
곱게 접힌 뽑기 종이가 올 한해에 대한 기원을 말해주는 듯 했다.
에마.
그해의 십이간지가 그려진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매다는 풍습.
이라고 알고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소망을 정성스레 적어 매다는 모습이 예뻤다.
우연히 찍은 모습인데, 왠지 정겨워 보인다.
차가운 몸을 녹이는 따끈함.
센소지에서의 장은 3일까지 계속 되었고,
조용하던 아사쿠사는 몇일간 계속 축제 분위기 였다.
나는 그이후로도 센소지를 몇번이고 다시 찾았고,
갈때마다 장이 서는 풍경은 보기 좋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
늦게까지 켜진 불빛들.
운세를 뽑으며 좋아하는 사람들.
#4
기모노를 입는 사람들.
기모노를 입은 여자.
정초가 되면 절이나 신사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대개는 평상복을 입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모노를 차려입고 나타난다.
기모노를 실제로 본것은 처음이었는데,
각자 저마다 개성을 살려 기모노를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이
아름다웠다.
몇번 도촬 하다가 카미나리몬 앞에서 너무 예쁜 이분을 발견해서,
사진구걸?해서 찍은 사진.
너무 흔쾌히 사진찍기를 허락하며 포즈를 취해주는 바람에
흥분해서 전신을 찍는 다는게 발을 잘라버리는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볼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한복보다 기모노가 아름다웠다거나,
ㅡ한복은 한복 나름대로, 기모노는 기모노 나름대로 아름답다ㅡ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복을 잘 안입어서
기모노 입는 일본인을 본받아야한다거나,
ㅡ시부야나 하라쥬쿠를 가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지 않는다.
한복이나 기모노는 평상복이 아니니까
자주 입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ㅡ
그런 판단은 유치하므로 안하기로 한다.
우리나라 여자 한복에 해당하는 기모노는
대개 화려한 색채가 주였다.
허리에 맨 오비나 리본에도
꽤나 신경을 쓴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목덜미가 슬쩍 보이는 디자인이
참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모노와 함께 신는 양말,
신발(게다?), 다른 악세사리, 머리스타일 하나 까지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한듯 했다.
실제로 기모노의 가격도 한복처럼 만만치 않은데
예쁜 기모노 차림을 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고.
#5
도꾜타워.
도꾜타워는 빠리의 에펠탑을 본따 만든 거라고 한다.
빠리의 에펠탑이 무지 부러웠나보다.
(일본에는 자유의 여신상도 있다던데,
일본에도'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라는 말이 있는걸까?)
영화와 소설 '도꾜타워'탓에
왠지 도꾜타워에 가보고 싶어졌다.
도꾜타워는 실제로 올라가 보는 것 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예쁘다는 말에,
롯뽄기의 롯뽄기 힐즈를 찾았다.
롯뽄기 힐즈의 전망대에서 도꾜타워를 보다.
해질 무렵 내려다본 도꾜 시내.
큰 도시에 갈때마다 전망대에 꼭 올라본다.
숲속에서는 숲전체를 볼 수 없듯이,
도시 한가운데서는 그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전망대에서 보는 도시의 다른 얼굴.
도꾜는 서울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도 잠깐.
(교통체증!)
붉게 빛나는 도꾜타워.
'女子, 마흔 - 사랑을 배우다 사랑에 빠진 결과는
헤어지거나 미리 헤어지기를 결심하거나 둘 중 하나다..
男子, 스물 - 사랑을 가르치다 사랑에 빠진 결과는
귀머거리가 되거나 완전한 벙거리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라고 쓰여진 영화 포스터를 떠올리며,
이렇게 아름다운 도꾜타워를 보면서
어쩜 그런 슬픈말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슬픔과 아름다움은 맞닿아 있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롯뽄기 힐즈 전망대 안 조명,장식.
롯뽄기 힐즈타워는 전망대, 미술관, 스타벅스, 명품샵 까지
복합화된 건물이었는데,
도꾜에 대부분의 큰 빌딩은 이런 스타일 이라고
같이 갔던 분이 이야기 해주셨다.
롯뽄기 힐즈타워 전망대는
아름다운 조명과 흥미로운 이벤트들로 가득 잘 꾸며져 있었고
뿐만 아니라 전망대를 방문하면서
모리 미술관 관람도 같이 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모리 미술관의 전시 수준이나 규모면에서도
전망대 못지않게 훌륭했다.
방문자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모리 미술관.
미술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곳에선 둘인 모든게 부러워.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건, '외로움'이었다.
낯선 이방인으로,
정이 들라치면 떠나야하는 여행자로.
젓가락한쌍, 신발한켤레까지.
둘인 모든게 부러웠다.
혼자임에 익숙하다.
자부했던 나는 없었다.
아사쿠사의 센소지근처에서 찍은 사진.
앙상히 남은 가지가 날카롭게 보인다.
문득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겨울을 느끼게 해버렸다.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 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이하생략)
라는 김남조의 '설일'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땐가 중학교땐가 수업시간에 배웠던
현대시가 이렇게 와닿을줄이야.
지금와 생각해보면 왠 청승이냐 싶지만
이땐 진짜 외로웠다.(웃음)
#6
"밥은 먹고다니니?"
여행하는 동안에
가족들과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가장 자주 듣는 소리가ㅡ
'밥은 먹고 다니냐?'였다.
두말하면 잔소리,
혼자다니는 것도 허전한데
배고프면 서럽더라,는
생각에 매 끼니는 빠짐 없이 잘 챙겨 먹고 다녔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남자선배 하나가,
내가 여행가기전에
'여행은 맛으로 남는거야'
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역시, 동감한다.(웃음)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는것도
여행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일본음식이 입에 잘 맞았고,
(워낙에 일본음식을 좋아했다.)
일본에서 먹는 그 음식의 맛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에 즐거웠다.
식당에 들어가서 옆에 사람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을
물어 주문하기도 했다.
음식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난다.
롯뽄기에서 먹은 라면.
국물이 조금 느끼했지만 너무 들큰하지도 않고
냄새도 없어서 맛있었다.
아사쿠사의 한 오래된 식당에서 먹었던 소바종류 였는데,
옆에 아줌마 두분이 드시고 계셔서 이름 물어봤더니
아줌마가 대신 주문도 해주셨다는.
내가 단지 한말 한마디는
'아리가또'
야채 튀김같은게 고명으로 올라가있던.
규동
호주에서도 일식집 가면 규동 자주 먹었다.
소고기 덮밥쯤 되는건가. 요시노야 라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매우 저렴하면서도 한끼 때우기 적절.
양파와 소고기만 볶은것 뿐인데, 맛있다+ _ +
타코야키
아사쿠사의 장터에서 찍은 풍경이다.
워낙 타코야키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었고,
종종 사먹었던거라 비교해 보려고 사먹었는데, 맛은 비슷한것 같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고운 파래가루? 같은걸 뿌려주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싫었다.
타코야키를 주먹만하게 빚어주는 데도 있었다.
레베카에게 권했더니,
자기는 문어는 못먹겠다나? 젓가락질 몇번 하더니 포기했다.
히요꼬
병아리 모양의 만쥬 인데,
뽀송한 병아리 안에 달콤한 소가 들어있었다.
처음엔 '귀여워서 어떻게 먹어?' 라고 해놓고
냠냠 잔인하게 먹어버렸다.
끄레뻬
사진은, 시부야의 스페인 자가 라는 곳에 있는 끄레뻬가게,
일본애들은 끄레뿌? 라고 하던가.
도꾜 어디서나 끄레뻬가게를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한평 남짓한 아주 좁은 가게에서
수십가지의 다양한 끄레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일본어를 못읽는 관계로 손가락으로 콕 찝어서 주문했다.
일본에서 자주 먹었던 간식.
그립다.
센소지의 야시장에서 꼬치구이 였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돼지고기 소고기를 끼워 양념을 발라 구워주었다.
입술에 기름이 묻어나는 느끼함>_<
모양이 예뻐서 먹었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포도알이나 사과, 딸기등의 과일을 막대에 꽂아 설탕으로 코팅을해 반짝 반짝 거리는게 너무 예뻐서
나도, 레베카도, 모양에 반해 먹었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전통적인 음식? 인것 같은데,
설탕이 이에 쩍쩍 달라붙어서 먹다가 뱉어버리고 딸기만 먹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손에 들고만 다니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덴뿌라우동?
튀김이 고명으로 올라간 우동,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먹을수 있는 음식이지만,
개인적으로 모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알고 있는 음식을 먹었다.
가쯔동, 부따동, 우동, 야끼소바, 오야꼬동, 스시 등등.
때론 익숙한게 좋은거다.
#7
Hello, stranger?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여행을 하면서 외롭기도 했지만 좋았던 점이 있다면,
그 어떤 누구와도 맘만먹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여행하는 내내 호스텔에 머물렀기 때문에
대개는 타지에서 여행온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여행 마지막날 밤에 같이 맥주를 마셨던 카멜이 준
'쁘띠 미뇽 라방'
(작고 귀여운 토끼라는 뜻의 프랑스어라고 하던데..?)
'빠리에 오면 연락해'라면서 명함을 줬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그리고 살면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
여행을 하면서 얻은게 있다면,
'흔치 않은 인연' 일게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본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
한국에서 내나이 또래가 사는 삶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20대를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20대의 정형화 된 모습을 깨어버렸다.
그가 사라진 골목.
일본에 도착한날,
전철을 잘못타서 오들 오들 떨면서 길을 헤맬때,
도와준 일본인이 한명 있었다.
우연히 전철에서 만났는데,
아사쿠사에 사는, 그것도 내 호스텔 바로 옆골목에 사는 남자!
내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줘서 눈물나게 고마웠다.
캐리어 들어주고, 어설픈 영어로 설명 해주려고 애쓰고,
나에게 '춥다'는 '사무이',
'피곤하다'는 '츠카레토'라고 가르쳐줬는데,
피곤하고 정신 없어서, 고맙다는 말 '아리가또'도 못했다.
그가 사라진 골목에 몇번 멈춰 섰던 기억이 난다.
고맙다는말. 했어야했는데. 아쉽다.
#8
밤거리를 걷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안타까웠던것 하나는,
밤에 잘 돌아다닐 수 없다는것이 었다.
워낙에 소심하고 겁이 많은 터라,
밤거리를 혼자 걷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걱정과는 달리, 아무일도 없었고, 즐거웠다.
같은 장소도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
아사쿠사에서의 밤이 낮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종이등도 한몫 하는 것같다.
센소지가 숙소로 부터 5분정도 거리에 있던 탓에
매일밤 센소지를 찾았었다.
돌아오는 길 한적한 골목길에서 한컷.
마지막 사진은 오뎅? 이라고 쓰여있는건가? (웃음)
이건 밤길에서 만난 호랑이.
(웃음)
고랑이쯤 되겠다.
밤길을 걷다보면 길냥이들을 많이 만난다.
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다리에 와 감겨들기 까지 한다.
예뻐서 쓰다듬어 줬지만
주머니에 소세지나 간식이 없어서 미안했다.
#9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여행.
나는 도꾜에 겨우 6일동안 머물렀다.
내가 포스팅의 제목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는 지극히 내가 가고싶은 곳만 가고
내가 보고싶은 것만 봤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내가 찍고 싶은 것만 찍었다.
(물론 게으름때문에 못찍은 것도 있지만)
ㅡ나는 여행을 했지, 가이드북을 쓰러 간게 아니기 때문에ㅡ
다시 도꾜에 다녀온다면
사람들 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을 가지고 기억을 편집한다.
이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임을 밝혀둔다.
초반에 여행을 시작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모든 결정을 내가 직접 해야하는 단독 여행.
처음 여행을 떠났을때,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내가 왜 여행을 시작했을까 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ㅡ사실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므로ㅡ
또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에 처해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보고가야지, 더 찍어가야지,
조바심내고 스스로의 강박에 시달리던 내가 떠오른다.
말만 자유여행이지, 전혀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많이 여유로워 지고 마음이 편안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고,
좀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도꾜에 머무는 동안
일과를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비일상적인듯 하지만,
비일상적인것만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는 아닌듯 하다.
일상과 비일상의 조화,
그안에서 느껴지는 일상적인 생활의 소중함,
그리고 비일상적인 생활이 주는 상쾌함과 자극.
그게 내가 느낀 여행의 매력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