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반토막의정어리 2008. 5. 20. 19:59 posted by yeena,


훔쳐보기의발단은어젯밤다시찾아온'눈밟는소리'였다.
어제밤에는잠이오지않았다.
이유는모르겠지만근래에잠에들기까지꽤많은시간이필요했던것같다.

침대에누웠는데잊고지냈던눈밟는소리가나기시작했다.
벌을받는마음으로눈을감고1시간넘게눈밟는소리를들었다.
도저히잠님이쉽게오지않을것같아'핸드폰싸이질'을했다.

다들너무잘들주무시는지아무도없었다.
우연히얼마전알게된사람의싸이에들어가봤다.
공개된다이어리가호기심을끌기충분했다.
의도하지는않았지만,아님어쩌면그가의도한바였는지모르겠지만,
나는다이어리'훔쳐보기'모드가되었다.

뭐,몇마디나눠보지않아서수업몇개를같이듣는다는공통점외엔
별거아는것도없는사이라당연한것이었겠지만,
그사람은나와는전혀다른사람이었다.

독실한기독교인이었고,주말에는봉사활동을가거나교회에서거의모든시간을보낸다.
주변사람들의사진을찍는것을좋아하며사진찍히기를망설이지않는다.
풍경사진보다인물사진을잘찍고,생일은가을이고,강아지를가지고있다는사실을알게되었고,
형이있다는것도알게되었으며꽤긍정적인사고방식을가지고있지만때때로뭔가마음과
같지않아힘들어한적도있는것같다.

기타를다룰줄알며다른여느남자들과같이카메라나노트북,아이팟등의기계에관심이많다.
영어와전공과매우친밀한관계를맺기위해노력하고있으며,가끔종종아프다.  
(뭐쓰다보니공통점도있는것같다.ㅋㅋ)

가끔나는'훔쳐보기'의묘한기분을탐닉하는데,
훔쳐보기의절정은아무래도싸이파도타기가아닐까싶다.
옛날에좋아서어쩔줄몰랐던첫사랑,정확히짝사랑?상대의싸이를훔쳐보기도하고,
학교에서얼핏마주쳤던짙은눈썹이인상적인선배의싸이를훔쳐보기도한다.

아주어렸을때소꿉친구의싸이를찾아무모한검색질에돌입하기도하고,
친구남자친구,여자친구의싸이도한번쯤들어가보게되고,  
소식이끊겨버린또는일방적으로소식을끊어버린친구의싸이도가보고,
이건당최왜인지모르겠는데,
학교다닐때완전싫어하다못해저주했던ㅋ친구의싸이를뒤적거리기도한다.


왜인지모르게미친듯이파도를타다가'미친파토타기'를끝냈을때,
기분이좋았던적은거의없었던것같다.
소문
에'방문자추적기'라는것이있어서,뒤를밟히는것이두렵기도하고,
행복해진혹은불행해진
극단적으로는탈퇴해버리고종적을감춰버린그들과마주했을때.
기분이언짢아진다.


사촌이땅을사면배가아픈나쁜심뽀?일까,
웃는사람들의얼굴앞에서상대적으로불행한나를보기도하고,
잘나가는그들앞에서박탈감혹은절망감을느끼기도하며,
열심히살고있는사람들앞에서나태한내가부끄러워지기도한다.

뭐다들한번쯤은그래본적이있겠지하는생각으로솔직하게고백하는거다.
너무나를윤리적으로비판받아마땅하다거나
관음증의변태라거나그렇게몰고가지는말아줬으면,하하.

자신은한번도그런적없다고하면할말없지만말이다.

훔쳐보기를하다보면상대방에대해몰랐던사실들에대해알게된다.
사람마다독특한개성이있고,절대같을수없다는것도새삼확인한다.
그렇지만어쩔수없는같은사람이라서같을수밖에없는면도발견할수있다.

오늘의훔쳐보기의결론은그거다.
나와는달라보여서흥미롭게훔쳐보기를시작한다.
하지만결국훔쳐보기의끝은나와혹은다른누구와도별로다르지않는사람이구나.
하게된다는것이다.



작은화면의불빛으로지친두눈과
엄지손가락과핸드폰을쥐고있는나머지오른쪽손가락들이마비를일으켜
잠님을맞을준비를했다.

훔쳐보기에대한이런저런생각을하면서잠에들수있었다.

혹시,'대상자'가내글을읽는다면기분나쁘게생각하지는말아줬으면좋겠다.
나는악의없는단순한호기심에당신의일기를훔쳐읽었을뿐이다.
내행동을인간관계좁은어떤한인간의사소하고도애정어린호기심정도로생각해줄수있다면
당신은진정한대인배이다.변태니악마니하고미워해도어쩔수없다.ㅎㅎ
음,당신의일기는'재미'있었다.

NIkon F3.

반토막의정어리 2008. 5. 15. 21:24 posted by yeena,

아마도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까?
가까운 지인의 어깨에 매달려 따라나온 그를 만난건.
그는 강철의 바디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무뚝뚝하지만 잠수함처럼 굳은 그가 좋았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날은 날씨가 꽤 맑았던것 같다.
광화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있었다.
우리도 그 사람들 속에 섞여 걷고 있었다.
그는 걷는동안 종종 나와 부딪혔다.
나는 낯선 이와의 접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인듯 아닌듯 그렇게 부딪혀 오는 그가 싫지 않았다.
20여분을 걸어 삼청동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까페에 이르렀을때쯤은
나는 그를 알고 지낸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와 같은 부류를 잘 알지못한다.
몇몇을 얼굴정도만 알고 지내는 정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유난히도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정직함때문이었다.

가볍고 날렵하지도,
클래식하거나 세련된 외모도 아니었지만,
그는 정말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항상 그는 '철컥'하고 나를 보았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 볼 때.
'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솔직함은 나역시도 솔직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사실 난 거의 상대와 눈을 맞추고 싶지 않아했다.
그 유리알같은 눈앞에서 나는 단 한번도 솔직했던 적이없었다.
아마도, 나는 그 눈앞에서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두려워 하고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그의 눈을 통해, 그 자신만의 생각으로 일그러뜨린 나의 모습을 보고있다는 사실은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그는 조금 달랐다.
아니, 분명 다른이들과는 달랐다.
단한번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것 같다.

 

왠지 나는,
지금의 나는 제멋대로 크롭해버린 사진처럼
균형을 잃고 망가져버린것만 같다.
가만히 화면속의 나를 바라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것만같다.
조잡한 플라스틱 장난감 처럼 나란 사람은 왜,
이다지도,
한없이 키치스러운가?

치솟을대로 치솟아 절대로 이를 수 없는 높기만한 '궁극의 자기애'와
숨쉬는 매 순간 현실속에서 깊을대로 깊어진 '자기 혐오사이'에서
끊임없이 추락하는 지금,
그의 정직함이 절실히 그립다 느낀다.


겨울옷을 정리하다.

먼지쌓인방 2008. 3. 27. 01:30 posted by yeena,

겨울옷을 정리하다 코 끝에 스친 향기로 그 날을 회상한다.
차갑고 하얀 눈의 향기가 옅게 묻어난다.

'너와 많이 닮았다.' 고 잠시 생각한다.

새하얀 시트 위에 네가 머문 자리를 가만히 손으로 쓸어보면
눈의 향기가 난다.

그 위에 가만히 볼을 대어 너를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머리에 떨어진 눈을 떨구고
얼어버린 손을 쓱쓱 비비며
나의 공간에 들어와
어색한듯 잠시 붉어진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잠시후 온기를 되찾은 너의 동선마다
느껴지던 향기를 기억한다.

반듯한 쇄골
그리고 안정감을 주는 적당히 굵은 목선을 따라
두근대는 너의 심박마다
은은하지만 생동감 있게 떠다니던
향기 분자의 근원을 찾아내려 애쓴 나를 기억한다.
서로를 읽고 기억하는 동안
달라진 나의 향기를 알아채던 너의 모습도 기억한다.

서늘한 옷깃에 잠시 묻었던 얼굴을 거둔다.
그날의 차가운 눈과
뜨거운 그날의 네가
향기로 추억된다.

섹스 후, 그의 품에 파고든다.

먼지쌓인방 2008. 1. 24. 22:44 posted by yeena,
가만히 몸을 돌려 그의 옆모습을 응시한다.
물기로 달라붙은 몇가닥의 머리칼, 가만히 감은 두 눈.
그리고 그 아래 검은 속눈썹. 조금은 물기없이 말라버린 입술과 볼.
그리고 땀방울이 맺힌 옆머리, 턱 아래까지 고르게 자란 수염.

나는 그를 읽기 위해 애쓴다.
'기억하고 싶진 않다.'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의 옆모습에 얼마간의 시선이 머문다.
그의 옆모습을 바라 보다 근원 모를 슬픈 감정이 일어 이내 돌아눕고 만다.

그가 핏줄 몇개가 선명하게 도드라진 팔을 움직여 내 허리를 감는다.
'나는 이런 팔이 좋아.'라고 말하며 나는 그의 팔을 읽어 내려간다.
그의 팔을 쓸어내려가는 짧은 시간동안에
그가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몇개의 씬을 떠올려본다.

곧 체온이 약간 올라간 그의 가슴을 등으로 느낀다.
나는 그의 품 안에 있으면서도 각인되어버린 그의 옆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외롭다.'고 느낀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안기기를 청한다.
그는 아무런 의미없이 더운 가슴으로 돌아누운 나를 품는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눈물을 흘린다.

나는 아무리 애를써도 그의 전부를 읽어내지 못한다.
그의 무게, 그의 웃음, 그의 피부와 살내음, 그의 수염, 그의 팔과 손길, 그의 목소리와 그의 땀.
그의 입술, 그리고 그안의 혀, 그가 내뿜는 숨결, 반듯한 쇄골, 알 수 없는 눈빛 그 모두가.
내곁에 머무르는 이것 전부가 그의 절반도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나는 실감한다.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는듯이 익숙히 눈가의 물기를 문지른다.
그는 감았던 팔을 풀고 시간을 확인한 뒤, 신속히 그에게서 나를 닦아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나의 공간으로 부터 빠져나간다.

나는 얼마동안 찬기운이 가신 콜라캔처럼 누워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시트위에 흐릿하게 남은 그를 본다.
무엇 특별한 것이라도 생각난 양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울을 보며 번진 눈화장을 고친다.
나는 침대시트를 벗겨 무심하게 세탁물 바구니에 쑤셔넣고 만다.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먼지쌓인방 2008. 1. 24. 02:16 posted by yeena,

그날,우리는지하철개찰구에서헤어졌다.
각자의주머니에손을넣고걷던그가,
나보다더하얀한쪽손을빼내어내게내밀었다.
나는그손을잠시바라보고는뒤도돌아보지않고개찰구를통과했다.
로영화의단골대사인'우리,이제그만만나.'와비슷한말한마디도없이헤어졌다.
지금와생각해보면아무런말하지않았지만암묵적동의하에이별했다.
누군가의뒷모습을바라보는일은너무나외로웠다.
나는외롭고싶지않았다그래서돌아서가는그의모습을볼수없었다.
이게우리의끝이라는것을알았다면
그의뒷모습을카메라처럼눈에담아둘걸그랬다는생각이문득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