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의 마음을 가진 여자.

먼지쌓인방 2009. 9. 21. 00:52 posted by yeena,


온기는 애초에 닿았던 기억도 없는 듯 차갑고, 
의미없는 반달손톱을 자국조차 선명하도록 무르고,
금은도 아닌 쇠도 가진 빛 조차 한 번 받지 못한,
납으로 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납의 마음을 가진 여자.

청소하는 여자.

여자이야기 2009. 7. 17. 00:53 posted by yeena,

기말고사 과제 제출을 위해 중간에 이야기가 많이 삭제되어 용두사미꼴이 되었음.
우선 단편 분량.

절대로

먼지쌓인방 2009. 7. 8. 15:23 posted by yeena,

너는 절대로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절대로 나를 그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절대로 후회하기 싫으니까.


 

반토막의정어리 2009. 7. 3. 03:50 posted by yeena,


너를 잃어가는 나의 시간들.
너를 잃고 흘러가는 나의 시간들.

시간이라는 외력은 감성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가.

 

 


2005년 11월 1일.

 ‘실험서 보다 다른 글쓰기에 익숙한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천오년 가을. 꽃띠 스물을 몽땅 바친 재수시절이 끝나고 조금 덜 풋풋한 신입생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한 해도 지나지 않았던 그 때. 그때 이미 나는 멈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길 한 가운데 서서 자꾸 뒤만 돌아본다. 얕은 발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던 그 길 위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 근처를 맴돌고 있다.

 언젠가 써놓은 한 줄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나는 그 때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애 쓴다. 그맘때 꾸역꾸역 써 내던 실험서 속의 나의 활자들은 참 차갑다. 또 그것은 속에 새끼들을 조롱조롱 매단 어미 쥐의 배를 가른 매스만큼이나 날카롭고 잔인하다. Y자 모양의 자궁 속에 채 여물지 못한 깍지 안 콩처럼 매달린 생명들을 보면서 하얀 가운 속에 품었던 단단하고 반짝거리던 해부기 세트가 오래된 무기처럼 빛을 잃었다.

 결국 길 끄트머리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던 나를 달랜 것은 300만원이 넘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다니던 학교 도서관이었다. 종일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어 손때 묻은 책에 안기고 그를 어루만졌다. 엄지와 검지사이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은 그리운 사람의 손처럼 따뜻했다.

 문학은 다정하고 그의 품은 언제나 포근하다. 어린 시절 좁은 집 한쪽에 쌓여있던 아빠의 오래된 책의 냄새가 그랬고 어린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10시면 강제소등을 하던 아빠 몰래 이불 속에서 읽었던 동화책 들이 그랬고 늦여름 저녁 엄마아빠 손을 잡고 산책나간 길에 들른 서점에 쌓여있던 책들이 그랬다.

 베개 밑에 숨겨놓고 읽었던 동화책은 나를 환상적인 초컬릿 공장으로 또 캥거루가 뛰노는 자연의 세계로 이끌었고 엄마가 큰 맘 먹고 한 질씩 사주던 과학백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와 점순의 사랑이야기에 가슴 설레 누가 볼까봐 부끄러워하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보기도 하고 사춘기 즈음엔 싱클레어의 방황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내가 쓴 책 한권을 갖는 것인데, 이것은 어렸을 적에 아빠와 했던 약속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릴 때 나는 아빠의 앨범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 조각 하나를 발견했고 그 것의 정체는 아빠가 생도시절에 써서 학보에 실린 시를 스크랩한 것이었다. 국어선생님을 꿈꾸던 아빠는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도 안내고 용돈까지 주는 해군사관학교를 가셨단다. 왕년에 문학 소년이 아니었던 이가 있겠냐마는 앨범에 고이 스크랩해둔 아빠의 꿈을 보면 아빠는 젊은 시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나 보다. 아빠의 시를 보고 나도 따라 동시를 쓰면 아빠는 당시에는 꽤 드물었던 컴퓨터로 프린트 해 주셨다. 그리고 좋은 시가 많이 모이면 책을 내어주마 하셨다. 향 싼 종이에 향내 나듯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문학의 향기는 자연스레 옮아 내게도 그 은은한 향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까지도 산행 후에 느낀 점을 장문의 기행문으로 써 홈페이지에 올리시는 아빠를 보면 그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오랜 시간동안 삶과 함께 지속되며 나눌수록 더욱 더 진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마음에 우물을 가지고 산다. 그 우물의 정확한 깊이도, 위치도, 빠져나오는 방법조차 알 수 없고 아무것도 짐작 할 수 없는 우물. 말하고 싶지만,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그런 우물. 그 우물은 우울이다. 원인도, 또렷한 현상도, 치료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 우울. 우울의 우물 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자면 문학을 가까이 하고 싶어진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운 적도 타고난 재능이라 할 만한 실력도 아니지만 가득 차 당장이라도 넘칠 듯 찰랑이는 마음을 덜기에 글을 읽고 쓰는 것 만한 것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 들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그들은 밑도 끝도 없는 우물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활자로서 독자의 눈 앞 에 재현 해 놓는다. 소설을 읽기만 하던 내가 언제인가 문득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척 짧고 엉성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우물 안에  앉아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내는 것이다. 별 거 아닌 나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 쓰다보면 우물물로 젖었던 바짓단이 마르고 눈가에 어렸던 뜨거움이 가신다.

 오늘도 책을 구경하러 간다.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책을 사는 버릇은 잦은 이사 때 마다 골칫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도 어쩌지 못하고 같은 책을 세 번째 산다. 나는 덕분에 책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읽은 책을 주거나 사랑하는 이 에게 보드라운 말이 담긴 책을 선물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아빠가 내게 건네주신 문학의 향기를 감사하게 여기며 그 향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소소한 책선물이지만 그의 마음에도 내가 사랑한 글이,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

 여전히 나는 한 걸음도 더 못 떼고 그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지만 이 시간 조차 감사히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마음이 지쳐 가끔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지면 나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들에 함께했던 시와 소설을 찾게 된다. 지금 나는 악의를 품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글을 쓰고 읽으며 어린 시절 안겼던 포근한 글 속에 얼굴을 부비며 위로 받는다. 나에게 문학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는 엄마이고 무릎에 나를 앉혀놓고 발톱을 깎이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눈물을 닦아주는 마른 수건이며 내 진심의 결정이다.